-연차를 쓴 다음날, 슈팅게임이 시작되다-
연차를 쓴 다음 날, '갤러그'가 시작됐다
연차를 쓰고 복귀한 다음날은 쌓인 업무를 쳐내기 바쁘다.
오전은 거의 이 업무를 쳐내는데 시간을 쏟게 된다.
이럴 때 업무는 마치 '갤러그' 게임같다.
갤러그라는 워딩에서 느껴지는 중년의 포스가 야속하지만,
그래도 이 거 이상 잘 설명할 수 있는 게임이 있을까 싶다.
쉴새없이 내려오는 적(업무)을 미사일로 맞춰 부셔도, 계속 적은 내려온다.
겨우 오전은 마무리 지을 수 있었으나, 적은 계속 달려든다.
-HIGH SCORE, HIGH TENSION - : '퍼펙트'에 중독된 플레이어
문득, 이건 오늘 하루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난 18년간 나의 회사 생활은, 거의 매일이 이 '갤러그' 게임의 반복이었다.
나는 그 게임에서 점점 점수가 높아지긴 했으나, 본 실력은 형편없는 '하수'였다.
갤러그는 총알이 무한이다. 그렇기에 모든 적을 놓치지 않고 잡는 '퍼펙트 플레이'가 고수들의 목표가 된다.
하수들은 바로 이 '퍼펙트'에 중독된다. 화면 위의 점수에만 집착한 나머지,
게임의 가장 중요한 대전제인 '죽지 않고 살아남는 것'을 잊어버린다.
쉴 새 없이 날아오는 적의 총알(예상치 못한 변수, 부당한 요구)을 피할 생각은 못 하고,
오직 내 미사일이 모든 적에게 꽂히는 쾌감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쏟아지는 모든 메일에 즉시 '완벽한' 답을 해야 했고,
문의하는 고객을 하나라도 놓칠까봐 많은 시간을 들였다.
리드를 고객으로 바꾸기 위한 강박이었다.
물론 일 자체를 퍼펙트하게 처리하기보다는 물리적인 시간의 소요가 컸다.
그 결과 '하이스코어'라는 높은 점수를 얻었을지는 몰라도,
정작 나는 적들이 쏜 총알을 피하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그렇게 하나 둘 잃어버린 전투기.
터져나가는 것은 늘 나의 영혼이었다.
-선택지는 '포기' '멸망' 두가지 뿐-
'갤러그'는 결코 '클리어'할 수 없는 게임이다.
하나의 스테이지가 끝나면 더 많은 적들이 쏟아져 나오는 무한 루프.
플레이어는 그저 GG를 선언하고 게임기를 꺼버리거나,
모든 전투기가 터져 게임오버가 될 때까지 버틸 뿐이다.
이 무한 반복의 게임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정말 '퇴사(GG)' 아니면 '소진(게임오버)' 뿐일까.
단순한 슈팅게임일뿐인데, 난 한없이 복잡하게 생각하는 중이다.
-나는 '더블파이터'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에 미쳤다.
'나는 왜 이기지도 못할 게임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려고 애쓰고 있는가?'
이 게임의 점수판은 내 인생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나는 '이게임'의 고수가 될 필요가 없었다.
이 게임은 그저, 내가 진짜 원하는 게임을 하기 위한 자원을 모으는 '파밍장'일 뿐이었다.
그래서 난 갤러그의 '하이스코어'가 아닌, '듀얼파이터'에 관심을 보이려 한다.
일부러 자신의 전투기 한 대를 적 보스에게 납치시킨다.
그리고 그 보스를 격추시켜 동료를 되찾아오면,
두 대의 전투기가 합체된 막강한 화력의 '듀얼 파이터'가 탄생한다.
리스크를 감수하고, 판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나의 진짜 게임의 목표, 듀얼파이터는 퇴근 후에 시작되는 '질그릇 스튜디오' 이다.
그 순간, 갤러그의 모든 룰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첫 번째 전략, '흘려보내기'는 회사 일을 더 잘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B급, C급 업무에 쏟을 미사일(에너지)을 아껴,
퇴근 후 나의 진짜 게임에 쏟아붓기 위한 '에너지 보존 전략'이었다.
-전략가, 그러나 다른 게임의-
나는 이제 이 게임의 전략가가 되기로 했다.
하지만 더이상은 갤러그 게임의 고수가 되기 위함이 아니다.
이 게임을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하여, 나의 진짜 게임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전략가다.
회사는 삶의 전부였지만, 평생 내 삶의 전부가 될 순 없다.
조금 더 현실적으로 회사를 바라보기로 했다.
내가 갈아넣은 30~40대처럼, 이제 회사는 나의 '진짜게임'을 위한
미네랄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라고 밀린업무를 쳐내며 공상의 나라로 빠져든다.
오늘도 여전히 미네랄 장전 중.
갤러그의 '듀얼파이터'가 되는 날은 길고도 길지만,
그날을 생각하며 또 총알을 날려본다.
..그래도 내려오는 적은 가만히 둘 순 없잖아.
바로 GAME OVER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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