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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SunQ탈출

흔들리는 40대 후반, 내 경력의 '영점조절'을 시작했다

by awake_ning 2025. 9. 10.

20년간의 경력이 적힌 이력서를 열었다. 
'제로베이스에서 연 매출 7억 원을 만들어낸 프로젝트 총괄 책임자'. 
내가 이런 사람이었다는 것을, 나는 왜 인지하지 못하고 살았을까. 
이것은 시스템 속에서 소비하던 '나'를 지우고, 내 손으로 진짜 '나'를 재정의하는 '영점조절'에 대한 기록이다. 
그 시작은 3년 전, 실패했던 퇴사 시도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실 3년 전인 2022년 중반에도, 나는 한번 본격적으로 퇴사 결심한 적이 있었다. 
내가 꿈꾸던 일에 레퍼런스를 마련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회사를 다니며 주말, 평일 밤을 쏟아 
납기를 하게 됐다. 
처음 벌린 일치고는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 이는 곧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그때 나는 한번 '일을 벌려보자'는 각오로 주변에 퇴사를 공언했다. 
그러나 이런저런 현실의 벽에 부딪혀 그 결심은 좌초되고 말았다.
추가적인 레퍼런스를 마련하기 위해 퇴사를 하는 것이 '두려웠던' 까닭이었다.
그리고 회사 업무를 병행하며 레퍼런스를 더 쌓을 생각 역시 '두려웠다'. 

오히려 그때 날 말리던 내 주변 친구들이 현재 퇴사를 해 다른 일을 하고 있고, 
난 여전히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이 회사에 남아 있다.

그렇게 다시 3년이 흘렀다. 한번 마음을 돌린뒤에는 꿈을 거의 접은 채, 마음만 피폐해져 있었다. 
다닐수록 좌절감만 깊어지는 회사, 많은 나이로 인해 이직이라는 뾰족한 대안도 없는 현실. 
그저 시간만 죽이며 퇴근 후에는 의미 없이 콘텐츠만 '소비'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다 문득,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금, 조심스럽게 그 '꿈'을 꾸기로 했다. 
단, 이번엔 충동적인 결심이 아니다. 정확히 3년 4개월 뒤, 철저히 준비된 퇴사를 하기로.

 

3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무엇일까. 
바로 '퇴사'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그때의 퇴사는 뚜렷한 계획없이, 뚜렷한 의지만 가득했던 '도피'에 가까웠다. 
현실이 힘드니, 레퍼런스 몇개를 무기 삼아 일단 탈출하고 보자는 충동적인 결심이었다. 
실패의 원인이었던 '두려움'의 실체는 결국 '준비되지 않음'에서 오는 막연함이었다.
앞이 안보이는 장소에서 공포감은 커지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퇴사는 3년 4개월이라는 명확한 '준비 기간'을 설정했고,
그 시간 동안 모아야 할 '시드머니', 로드맵 등 구체적인 목표를 세웠다. 
무엇보다, '콘텐츠 제작소'라는 사업 모델을 구체화하고, 결과물을 꾸준히 증명해 나가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두려움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이제는 그 두려움의 크기를 인정하고 가늠한 뒤, 
그것을 관리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계획과 무기를 손에 쥔 것이다. 
이것이 3년 전의 실패와 지금의 도전이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다.


그 프로젝트의 첫걸음으로, 나는 가장 먼저 이력서 파일을 열었다. 
군대에서 사격훈련 전 총의 영점을 조절하듯, 지난 20년의 경력을 정조준해 나의 현재 '영점'을 다시 조절하기 위함이었다.

 


한 줄 한 줄 적힌 성과 뒤에는 
매일 아침 버스와 지하철에 몸을 싣던 고단함과 
일주일에 서너 번씩 야근을 하며 보냈던 노고가 숨어 있었다. 
특히 기재된 연봉 액수에서 지난 시간의 씁쓸함은 절정에 달했다. 

그리고 한가지를 꺠달았다.
나는 이력서에 적힌 직함과 시스템이 정해준 역할이 '나'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었다.
그런데 낡은 단어들을 지우고 새로운 문장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내 안의 무언가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수동적으로 적혀있던 업무들을 '내' 관점으로 재해석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단순한 IT 업무를 하던 사람이 아니었다. 
'제로베이스에서 연 매출 7억 원을 만들어낸 프로젝트 총괄 책임자'였다. 
'지겨운 고객 관리'가 아니라 '12년간 고객의 성공을 도우며 관계를 구축한 영업숙련자'였다. 
수많은 고객사와 소통하며 익힌 '협상의 기술', 견적부터 납기까지 책임진 'End-to-End 업무 경험', 
그리고 수많은 컴플레인을 해결하며 얻은 '단단한 마음'까지. 이 모든 것이 나의 진짜 '역사'였다.

이력서를 다시 쓰는 행위는 과거를 재정의하고,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내 손으로 '창조'하는 첫 번째 작업이었다.

 


그렇게 완성된 이력서는 더 이상 구직 서류가 아니었다. 
이것은 지난 20년 직장 생활에 대한 나의 공식적인 답변이며, 
앞으로 만들어갈 '내 콘텐츠 제작소'의 첫 사업 계획서 초안이자, 나 자신에게 보내는 출사표다.

 

내 차례는 언제 올까?


12년간 부르던 퇴사 노래의 마침표를 찍고, 
내 이름으로 된 새로운 서사의 첫 문장을 이 이력서 위에 꾹꾹 눌러썼다.
어쩌면 지난 20년의 시간은 그저 버티는 시간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세상이 정해준 양식 위에서, 나만의 첫 문장을 쓰기 위해 묵묵히 잉크를 채워온 시간이었으리라. 
그 잉크를 비로소 사용해 보기 위한 시간이다.